좀비와 디스토피아

Posted 2008/12/25 18:31 by 민트컬러

1. 좀비

 

 

 

좀비는 꽤 독특한 소재다. 일반적으로 좀비는 이성이 없고 인간의 생고기를 간절히 원하는 존재로 그려진다(생 피를 원하기도 한다). 게임이나 과거의 좀비는 관절이 썩어 문드러졌다는 인식 하에 몸짓이 대단히 느려터진 exp1 짜리 몹으로 여겨져 왔으나, 최근에 들어와 좀비는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설정으로 포레스트 검프마냥 쌩쌩한 무쇠다리를 착용하고 열심히 뛰어다니게 된다.

 

 

 

여러 매체에서 등장하는 좀비는 종류는 대략 두가지인데, 게임 등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죽은자가 다시 살아난다는 설정의 언데드형 좀비, 그리고 최근에 소설이나 영화에서 유행하는 바이러스형 좀비가 있다. 여기에서 또 여러가지 유형으로 가지가 나눠지지만 대략적인 부류는 두 부류다. (새로운 유형으로는 레지던트이블에서 둘 다를 혼합시켜 바이러스가 죽은자를 깨운다는 설정을 사용했다)

 

 

 

좀비라는 소재가 재미있는 이유는 디스토피아적 세계관과 맞물려 있는 핵심 소재이기 때문이다. 디스토피아적 환상세계 (디스'토피아' 라는 단어 자체가 환상세계임을 의미한다) 는 현대인들이 즐겨 찾는 기호적 환상이다. 각설하고, 좀비가 디스토피아와 연관될 수 있는 핵심 이유는 바로 좀비는 전염된다는 설정 때문일 것이다.

 

 

 

좀비는 전염된다. 전염된 자는 이성을 잃고 좀비가 된다. 좀비라는 것은 인류의 가장 먼 외집단이다. 석기시대 인류를 공포에 떨게 만들던 맹수보다 더 멀다. 평범한 사람의 이성을 잃게 하고, 전염시켜, 다른 사람을 공격하게 만든다는 이유에서다. 물론 좀비한테 물려서 죽지는 않는다. 그러나 영화에선 흔히 좀비에게 전염되느니 자살하겠다는 장면이 자주 보이는데, 이것은 죽음보다 이성을 잃고 좀비가 되는게 더 싫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에게 있어서 죽음이란 단순히 체내 신진대사의 중지를 의미한다는 것이 아닌 이성을 잃는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좀비가 된다는 것은 이성의 상실, 즉 죽음을 의미하며, 더 치욕적인 것은 그들과 같은 부류가 된다는 것이다. 당연히 좀비가 되는 것은 죽음보다 싫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좀비는 전염된다 라는 설정은 인류의 멸종이라는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에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 실재로 대부분의 좀비 영화는 좀비로 인해 인류가 멸종한다는 디스토피아가 주 세계관이다. 아니, 아닌 것이 있긴 하던가? 좀비를 소재로 하는 콘텐츠들은 필연적으로 인류세계의 멸절과 연관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좀비의 전염성은 특히 또 다른 갈등양상을 제공하는데, 바로 주인공의 주변인이 전염되는 경우가 그렇다. 죽여야 할 것인가, 살려야 할 것인가? 대상이 내 부모님일 수도 있고, 가장 친한 친구, 혹은 가족, 바로 내 반려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죽이지 않으면 나도 좀비가 된다. 이 경우에 주인공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끔직하고도 절망의 상황에서 주인공의 행동에 따라 유저 (영화라면 관객/소설이라면 독자/뭉뚱그려서 유저User) 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하고 주인공을 저주하기도 하는 것이다. (물론 최고이자 가장 시시한 결말은 치료제를 먹여 원상복귀 시키는 것이다)

 

 

 

그나저나 이 별로 쓰임새도 없을 잡글을 적고 보니 한가지 궁금점이 남는다.

 

 

왜 좀비는 생사람을 아구아구 뜯어먹다가 그 사람이 좀비가 되면 안뜯어먹을까?

왜 자기들끼리는 안싸우냐고. 그것 참 미스테리하네.

 

 

 


 

 

 

2. 디스토피아

 

 


 

나는 개인적으로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이 좋다. 그냥 막 재밌다. 매트릭스, 투모로우, 클로버필드, 우주전쟁, 미스트, 나는 전설이다 등등. 세계가 멸망하고 있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전대미문의 재앙이 닥치고 나는 그 한복판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나는 계속 살아갈 것인가? 세상에 죽음이 흘러넘칠 때 혹은 재앙이 몰아닥칠 때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재미있는 상상들. 물론 전제는 이러하다.

 

젠장 T^T 난 살꺼야 

 

디스토피아를 그린 영화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기분이 든다. 아슬아슬하게 살아남는다거나, 전대미문의 괴수가 우리 주변을 어슬렁거린다거나(클로버필드). 공포영화를 보며 느끼는 카타르시스와 같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바로 내 주변에 재앙이 닥친다는 설정은 대단히 스릴넘치는 설정이다. 생사기로가 바로 내 눈 앞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그곳은 곧 아프리카의 밀림 한 복판에 떨어진 맨발 맨손의 인류와도 같다. 본능이 다 드러난다. 이성 밑에서 쿨쿨 잠자던 본성본능 다 깨어나신다. 추잡하고 더러운 일 쯤이야 내 생존을 위해서라면 다 드러내주신다. 다 까발려지는 그 때, 그 때야말로 디스토피아 영화의 절정이다. 빙빙 돌려말하지 않고, 현실에 안주해 있는 사람들에게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니까. 사람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이야기하니까. 

 

 


물론 난 인간은 더럽고 추잡한 하찮은 생물이야! 라고 주장하는 비관론자가 아니다. 내 성격은 그렇게 시니컬하지도 않고 시크하다거나 다크하다거나... 뭐! 어쨌건 그런 부류의 사람은 아니라고 스스로 확신한다. 오히려 나는 휴머니스트가 되고 싶은 사람이다. 본능과 무질서가 아닌 양심과 정의가 지켜지는 세상에서 살고싶은게 내 바람이고 소망이다. 그런 내가 디스토피아를 보며 재미를 느끼는 것은 왜일까? 아마도 그것은 나에게 끊임없이 정신을 일깨우는 자극제가 되어주기 때문에 그렇지 않나 싶다. 저런 상황이 닥쳐오더라도 사람답게 살다 죽어야지 하는 자극. 디스토피아를 그리는 영화의 주제는 다 그렇다. 사람답게 살라는 것이다. 죽음 앞에서 당당해져라. 추잡한 본성따윈 사뿐히 즈려밟아라. 비굴하지 마라. 디스토피아가 주는 재미란 그런 것에서 오지 않나 싶다.

 

 

 

 

 

 

추신.

 

난 주인공 죽이는 좀비 or 디스토피아 소설&영화가 너무 싫다.

영화감독들은 각성하라! 작가들은 각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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